유년의 추억이 서린곳. 대구 팔공산
유년의 추억이 서린곳. 대구 팔공산

대구의 얼굴같은 명산 팔공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사랑할수 밖에 없을 조건을 갖춘 대한민국. 그냥 시내버스나 지하철 전철 타고 내려서 바로 산으로 올라갈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세계 몇안되는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오늘은 그간 고국 명산 순례 트레킹 때 가야산 까지 달려와 합류하려했고 달구벌로 입성했을때 반가이 맞아주며 반월당 주변 술마시기 좋은 곳 3군데를 선정하여 순례하면서 함께 시간을 향유케 해주신 대구 진정한 선배 산꾼 김준영 대장님과 지구촌 명산 트레킹을 항시 꿈꾸며 사시는 동료 김성희님과 동반하였습니다.

곡차 여러종류를 마트에서 장보고 탑골에서 시작하여 깔딱고개를 넘어 염불암 옆 산장을 지나 염불봉 동봉을 밟고 이백리길과 병풍바위를 거쳐 동화사로 내려오는 일정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시원한 바람 이따금 불어오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산행에 완벽하게 적합한 오늘의 일기.

시작하는 초입에 수십명 대군의 대학생들이 엠티를 위해 왔는지 왁자지끌 합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이것이 하나의 전통인양 통막걸리 말로 두통을 받아와서 그걸 줄로 나무막대로 메어서 낑낑거리며 들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참으로 우습고도 즐거운 추억을 들추어내어 줍디다. 그 때 그 시절을..

길은 길인데 거의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않고 진정한 산꾼들 만이 이용하는 등산로. 사람들의 발자취가 별로 없는 아주 가파르고도 힘든 그러나 최단 코스를 택한듯 합니다. 수정처럼 맑디맑은 시냇물을 바라보면서 우리들 마음도 정갈하게 씻어가며 동봉을 향해 땀을 쏟아냅니다.

철저하게 바람으로보터 보호받는 남향에서 시작하니 오히려 너우 덥게 여겨지는 늦가을의 기후입니다. 여전히 게으른 나무들은 아직도 단풍색을 입고 있고 가지끝에는 여태 가을이 맺혀있습니다. 물소리 청아하고 염불암에서는 보수공사를 하는지 들여오는 기계의 규칙적인 소리가 마치 목어의 울음인양 자연의 소리로 만들어줍니다.

깔딱 비탈을 열심히 올라 등산학교에서 운영하던 대피소에서 잠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한숨을 돌립니다. 백팩킹을 좋아하는 산꾼들의 아지트라고 설명하는 산장. 어느 수용소같은 투박한 건물이지만 이곳에서 청춘의 꿈을 나누었던 추억이 서린곳일터라 참으로 정감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염불봉을 올라 동봉 바로 아래에서 신선이 머물다 간 흔적이 역력한 자리에서 우리도 그들 처럼 되고자 한상 푸짐하게 점심상을 차립니다.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식사준비. 식탁이 마련되고 땀이 식으면 추울세라 난로를 피워주고 코펠 바닥에 마른 멸치, 오징어 깔고 기름으로 부쳐온 두부 편뒤 파넣고 양념육수를 부어 끓입니다. 그동안 씻어온 콩나물로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고요. 한쪽은 밥과 반찬등을 셋엎하고..

김대장의 신조가 쌔가 빠지게 열심히 오르고 느긋하게 두시간 쯤은 먹고 마시고 기분좋게 하산하는 것. 일련의 준비하는 과정이 진정 달인의 경지입니다. 곡차도 다양하게 우선 진짜 산꾼들이 마시는 귀한 양귀비주로 시작하여 백세주, 막걸리, 맥주 순으로 넘어갑니다.

두부 졸임을 다먹고는 그 육수에다 다시 어묵을 깔고 끓여주니 좋은 산 안주 어묵탕이 됩니다. 손맛 좋은 우리 둘이서 캠핑이나 백팩킹 때 손쉽고 맛있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레시피 책을 하나 내자며 결의도 해봅니다. 이어서 콩나물 라면으로 가져온 밥과 찬으로 점심 먹고 마지막 우엉차를 달여서 한잔씩. 그러고 나니 거의 두시간 가까이 지났습니다. 전망좋은 자리에서 이렇게 입과 눈을 즐겝게 해주고 나니 우리도 당연 신선이 아니될 수 있겠습니까? 취기마저 도와주는데..

능선에 오르는 북향에서 날아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내 한기를 머금은 칼바람. 옷깃을 여미게 하고 후드를 아니쓸 수 없습니다. 장비 챙기고 조금 늦게 올라온 일행이 까스(짙은 운무)가 가득차서 동봉을 올라야 별 의미가 없을것이라는 유혹아닌 유혹에 그냥 능선을 따라 걷다가 58 종주로를 따라 하산 동화사에 안착하기로 했습니다.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이백리길.

내고향 대구 지척에 있는 이 팔공산 길이 이리도 좋을 줄 몰랐습니다. 바위를 넘고 협로를 따라 아슬하게 이어지고 밧줄을 타고 오르고 내리며 가는 길. 우리나라를 넘어 해외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재미있고 예쁜 길입디다. 이런 명산이 왜 아직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한 김대장님의 답변은 이산은 사유지가 너무 많아서 힘들낍니다. 였습니다.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간 방문한 국립공원 산들을 기억해내니 참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찰쪽에서 보면 자기네 소유지니 입장료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은 국립공원 측에서 이것을 받아서 공원 관리에 투자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현실을 보는듯 하여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미국의 사례만 보아도 국립공원 입장료라기 보다 차량들의 주차비로 부과하고 현직에서 물러난 순수 자원봉사자등의 인력들이 합하여 아름다운 공원 유지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대형 쓰레기 통을 비치하여 한 티끌없이 하게 하고 상시로 등산로 보수를 하며 쾌적한 방문을 부여합니다. 국가가 받아야 할 돈을 사찰들이 뺏어가는 것 같아.. 미워서 동화사 대웅전도 들르지 않고 그냥 와버렸답니다.
하산주는 필수 코스. 서문시장 지역에서 산꾼들만이 가는 식당이라는 똘똘이식당에 갔습니다. 맥주 세병에 기본 반찬겸 안주로 제법 맛갈스럽게 깔리는 만원의 행복. 기실 맥주를 마시니 배가 불러 다른 식사나 안주도 필요가 없을듯. 맥주 15병을 빈병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먼 미국에서 왔다고 호기부려 아구수육을 안주로 하나 시키니 이쁘장한 쥔 아주머니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왠일이냐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한 말 끼어듭니다. 기분이 좋아 꼬불쳐둔 숨은 먹거리들을 안주로 몇가지 더 내어옵니다. 웃음과 정이 가득한 조그만 후미진 골목의 식당. 술익는 골목에 밤도 깊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