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가을이 익고있는 속리산.
여전히 가을이 익고있는 속리산.
여전히 가을이 익고있는 속리산.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주 트레킹의 고객으로 미국으로 자주와 산동무가 된 동행들의 초청으로 속리산 산행을 가기위해 대전역에서 집결하기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예상된다하여 우중산행에 대비하여 집을 나섰는데 넓은 기차창에 보이는 바깥 풍경은 그저 고즈넉할 뿐 아직 비는 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느긋하게 완행열차를 타고 잠도 청하며 지나는 역마다 서린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그리 무료한 작업만은 아닙니다. 마중나온 일행들의 차를 타고 법주사로 달립니다. 꼬불꼬불 어지러운 재를 넘어 당도한 속리산 입구. 일주문이 우리를 반깁니다.

왕복 13킬로미터에 한 700미터를 올라 문장대를 만나는 산행길입니다. 물결 하나 일지않는 소담스런 호수를 지나 이번 비로 부쩍 늘어난 냇물이 깔끔하게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수인사를 나눕니다. 식수원지답게 너무도 정갈하여 한웅큼 쥐어 마시고 싶은 그리웠던 정한수입니다.

월요일인데다 비요일이라 오가는 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세심정 휴게소에서 모친이 담은 술이라는 동동주 한됫박을 패트병에 담아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12월 동지가 머지 않았는데 아직 산에는 단풍이 여전합니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 보면 잎은 언제부터 말라 있는 상태입니다.

극심한 가뭄에 단풍으로 물들다 고갈되었기에 그 상태의 빛갈과 상태로 굳어버린 애처러운 모습입니다. 그래도 산길을 가득 메운 단풍이 싫지는 않습니다. 날씨마저 받쳐주니 아직도 가을인 양 마음껏 땀으로 멱을 감습니다. 가능하면 인공을 가미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길. 자연석으로 개설한 돌계단이 참 좋습니다. 한발 한발 내 디디며 촉촉하게 젖은 낙엽들을 밟으며 만추속으로 들어갑니다.

할딱 고개. 문장대 정상이 가까워지면 길을 점점 가파라지고 보현재 휴게소를 덮치는 고개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이리도 힘든 고개 올라왔으니 한시름 풀고 가라는 쥔장의 상술도 있지만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민간 무허가 휴게소가 많은 것도 특이한데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더이다.

서구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보전을 위하여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그런 측면에서의 휴게소 설치는 못마땅 하나 인간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고 한잔 곡차를 즐기는 나로서는 아기자기한 우리 산과 더불어 양념 같은 즐거움이 있어 좋더이다. 정상을 한 30분 남기고 냉천골 휴게소의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하고 여장을 품니다.

비가 더 내리는 이유도 있었지만 몇 안되는 등산객에 안스러운 쥔장이 반가이 대해주는 인정에 끌려... 잔술 3000원. 참으로 오래된 친구같은 정겨운 문구입니다. 도토리 묵에 당귀 동동주를 시켜 가져간 도시락과 늦은 점심 해결하는데 술향이 좋고 혀에 착착 감깁니다. 후덕한 쥔장 불러 앉혀놓고 술담그는 레시피 물으니 서슴없이 알려줍니다.

그 과정을 듣고보니 술맛이 맛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고 아래 휴게소서 사가지고 온 술은 맛이 없어서 남기게 됩니다.

배낭을 맡겨두고 정상을 오릅니다. 기분 좋은 취기로 돌계단을 오르니 제법 가파른 사면인데도 힘이 들지가 않습니다. 근심의 배낭을 벗어버린 탓이겠지요. 마지막 정상에 올랐습니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덮힌 세상. 정말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농무입니다. 양편으로 설치해둔 안내도를 보면서 저쯤이 천황봉이겠구나 요쯤이 묘봉이려니 하며 짐작으로 방향을 정하고 상상으로 산세와 풍경을 그려봅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실날같은 비에 젖으며 가슴으로 그려야 하는 문장대의 정상을 전세내어 즐깁니다. 또 다른 감회에 젖어봅니다. 속리산의.... 한껏 여유를 부리며 내려오다 법주사 본당에 이르니 이미 칠흑같은 어둠이 깔리고 희미하지만 그래도 자비로운 미소로 반기는 대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잠시 산사의 향기를 맡으며 쉬는데 한무리의 스님들이 우르르 몰려 나옵니다. 템플스테이 객들도 웅성웅성 몰려들고..

6시를 맞추어 저녁 예불을 알리는 북과 종의 울림. 승무 후반의 현란한 손놀림의 북가락은 아닐지라도 두명이 번갈아 가며 치는 거대한 법고의 깊은 소리는 중생구도를 달성키 위해 세상을 모두 품으려 합니다. 너무 오래 북놀음이 이어진다 싶어 자리를 털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이제 불빛도 하나 없고 랜턴을 켭니다. 산마을의 불빛 따라 가는 길. 이제 뒷전에선 몇십구비 흘러가는 범종의 울림이 우리의 심금도 울리며 깊어가는 속리산의 밤을 평온하게 해줍니다.

산야초 전문 식당. 몇곳을 둘러보다 이곳을 택해 들어가서 정식을 시켰습니다. 주로 대추를 많이 쓰는 식당답게 먼저 내어주는 대추차가의 맛이 은은하게 깊었습니다. 소주를 시키니 이내 도토리묵 무침과 전 그리고 노루궁뎅이 버섯 안주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돌솥밥에 버섯 불고기 집된장 찌게를 필두로 깔리는 수십가지 찬과 음식들.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런 맛에 한점 남김없이 접시들을 비워버렸습니다. 이것이 장인에 대한 마땅한 예의라 생각하면서요. 늦가을 기분 좋은 산행에 별미의 밥 한상을 보상으로 받으니 오늘의 하루도 행복으로 마감됩니다.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챙겨주는 아름다운 동행들이 있어 더욱 행복한 속리산 문장대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