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셔 국립공원의 Grinnell Glacier Trail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Grinnell Glacier Trail

바람이 앞서 쓸고 지나가며 아침을 깨우니 고요했던 산촌도 부산하게 뒷북을 칩니다. 오늘은 빙하공원에 와서 빙하를 만져보지 않을 수는 없는 지라 숙소에서 세 시간을 달려야 이르는 Many Glacier 지역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비록 왕복 6시간을 길에다 투자하더라도 그만큼 아름다운 길이, 미려한 정상이 기다려준다면 마다 할 수 없는 우리 산객들.
평소 같으면 Going to the sun road로 가로지르면 두 시간이면 충분한데 하필이면 이때 맞추어 산불이 났는지 로간 패스에서부터 해뜨는 동리 Rising Sun 까지의 도로를 폐쇄시킨지라 공원 외곽으로 돌아가자니 평소보다 한 시간을 더 낭비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너무도 방대한 지역이고 속력을 낼 수 없는 험준한 산악지형이라 평소에도 이동시간이 걸리는데 산불마저 우리의 인내심을 확인하려는지..

글레이셔 국립공원에는 관광 및 트레킹 명소 세 지역이 있는 바 로간 패스, 메디신 호수, 그리고 오늘 우리가 갈 곳인 매니 글레이셔 지역입니다. 지명을 보면 그 특성을 알듯이 이 매니 글레이셔 지역은 만년설산이 산재해 있어 그만큼 수려한 트레일이 많습니다.

호수의 보트를 타고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아이스버그 호수 트레일과 오늘 우리가 걸을 그리넬 빙하 트레일을 비롯해서 정상에서 빙하를 접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는 길이 대다수인데 시기를 잘 맞추면 산허리 까지 내려온 빙하를 대하게 되기도 합니다.

공원의 동쪽 입구인 세인트 메리에서 매니 글레이셔로 가는 길은 대자연의 서사시를 듣고 보면서 가는 길입니다. 고봉들이 연이어 달려가는 가운데 유난히 많은 호수들을 끼고 있는 벨리에는 무슨 연유로 망부석처럼 선채로 고사목이 되었는지 하얗게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 온 들과 야산을 메우고 있습니다.

기온 탓인지 병충해 탓인지 죽은 채 말라버린 나목들이 대충 헤아려도 수십만 거루. 묘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마치 국립 현충원의 하얀 십자가들이 줄을 맞춰서 이어지듯 보는 각도에 따라 정연하게 서있는 하얀 고사목들. 이 산을 이 자연을 목숨으로 지키다 산화한 이들의 넋인 양 느껴집니다. 산군의 중앙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설봉들이 빙하를 덮고 포진해 있으니 그 장대한 풍광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참으로 야릇하게 합니다.
어서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뿐이죠. 헌데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날의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고산 지대의 특징인데 아무래도 눈비 잦으니 이토록 장엄한 빙하지대를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이 매니 글레이셔 지역은 특히 더할 것입니다. 하늘에는 자욱한 구름밭과 이어서 파란 하늘 그리고 구름 또 빈 하늘.. 변덕스러울 날씨가 예상되는 하늘의 징조입니다.

Grinnell Glacier Trail을 선택했습니다. 두 개의 호수를 지나며 산정 빙하 가까운 곳에 까지 이르러 유빙조각이라도 하나 먹어 볼 수 있는 왕복 11마일에 800미터 정도 고도를 오르는 길입니다. 예년 같으면 산정 가득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야 하는데 계속되는 서부의 가뭄 때문에 빙하와 눈이 인색하게 치장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 호사다마라고 빙하가 더위에 많이 녹으니 그 물들이 모여 폭포를 만들어 산 가득 폭포수의 향연은 가히 볼만합니다. 여기 저기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모두들에게 배낭에 비옷과 방수 장비를 챙기라 명하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실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의를 착용하려하는데 이내 또 햇살이 환하게 드리워 그냥 오르기 시작합니다.

우의를 입으면 그만큼 더워 땀으로 사우나 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한답니다. 그리넬 호수의 맑은 물빛을 감상하며 힐링을 하고 저 멀리 보이는 구름처럼 띠를 두르고 있는 그리넬 빙하 산정에게 한번 씩 눈길을 주며 오르는 길은 미지의 세계를 접하러 가는 호기심과 기다림으로 사뭇 흥분된 마음입니다. 넓게 펼쳐진 계곡은 자연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수려함을 담아내고 있으니 짙은 숲이며 창연한 바위며 그 바위들을 덮고 있는 고색의 이끼며 오랜 세월 산을 지켜온 고사목들 그리고 그 틈새를 이어가는 야생화의 빛깔들.. 짙푸른 침엽수림에 하얗게 건사한 고사목.. 이 모두들이 산길의 색채를 고즈넉하게 채워주어 참으로 고운 길입니다.

중턱을 오를 즈음에 이제는 제법 비가 내립니다. 모두 방수복을 입도록 지시했는데 한 여성이 우의 가지고는 왔는데 그 까짓 옷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귀찮고 무거워 숙소에다 빼놓고 왔답니다. 50년 가까이 살아온 지 인생 탓할 수도 없고 그냥 좀 당해보고 배우라고 내버려둘까도 했는데 마음이 약해서 내 것을 줍니다. 덕택에 흠뻑 젖을 수밖에..
그래도 차츰 시야에 다가오는 만년설산의 준수한 비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오르는 발길은 더욱 신이 납니다. 꽃길도 지나고 풀빛 고운 섶길도 지나고 벼랑길도 지나며 어느 누가 길을 내었는지 참 최상의 선택이었음을 치하하며 산의 고운 자태를 마음껏 감상하며 오르는데 자욱하게 농무에 쌓인 그리넬 산정이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듯합니다. 오늘 내린 빗물로 다시 채워진 weeping wall. 절벽에 가득 흐르는 물 때문에 붙여진 이름 통곡의 벽. 하나의 명경을 만들어냅니다.
숨 고르며 한번 씩 왔던 길 되돌아보면 매니 글레이셔 캐년은 더욱 멀어지고 그리넬 호수의 빛깔은 더욱 옥색으로 변해갑니다. 빙하에 함유된 석회질이 빛의 투영과 반사를 통해 만들어내는 마술 덕이죠. 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둣이 햇님이 밉상스럽게 구름을 벗어나 빙긋 웃습니다.

그래도 함께 너그러워 질수 있는 것은 하루 한 길을 오르며 맑은 날과 궂은 날이 주는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며 가는 걸음. 또 다른 묘미입니다. 바람이 일구는 물결 위에 한층 가까워진 햇볕이 호수를 비추니 부서지는 빛의 조각들은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고 우리의 노고를 포상이라도 하듯이 기쁨을 준답니다.

다시 비바람이 몰아칠 때 정상에 올랐습니다. 절벽처럼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정 거벽. 그 주위로 수 만년 이어온 빙하가 두텁게 쌓였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한 유빙들이 한가로이 옥빛 산정 호수를 노니는데 한조각 집어 들어 맛을 봅니다. 텁텁한 석회질의 맛이어도 장구한 세월의 맛을 보는 일도 흥미롭습니다. 어디서 몰려오는지 심하게 바람이 일어도 한동안 무감각한 채 무념무상에 빠져버립니다.

가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산이 전하는 소리를 경청합니다. 바람소리 숨죽인 산새소리 폭포의 낙하소리... 이 깨어지면 안 될 정적 속에서 지나온 여정을 가만 되돌아봅니다. 꼬박 하루를 왕복 운전이동에 투자해야 했던 이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탐방 일정. 과연 그럴 가치가 있을까 하며 결정을 주저했던 순간들.

그 머나먼 이동만큼 자연이 응답을 해줄까 했던 의구심. 갑자기 이 미려한 그리넬 빙하 산정을 마주하며 무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수천리 길 달려온 보람이 이제야 느껴지는 이 아둔함. 아. 왜 나는 산과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이었을까!

산은 내 수치스러움을 달래라도 주듯이 구름 걷히고 환해지는 틈으로 빙긋이 자애로운 웃음을 머금은 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화답하는 싱그러운 바람도 한결 꽃향기 담뿍 품고서 지나갑니다.


글쓴이
박춘기 - 트레킹여행 전문가
미주 트레킹 여행사는 미국의 심트부인 워싱턴에 본점을 두고 있으며 미주 북미, 중미, 남미 지역에 가장 아름다운 명산과 명산행로를 트레킹 하며 수중 세계가 미려한 캐리비언에서 스쿠바 다이빙과 관광 및 크루저 여행 그리고 미국 대륙 횡단 트레킹 여행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국 내에서는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많은 트레킹 전문 여행사가 있습니다만 거의가 동남아나 유럽, 중국과 일본 등에 치우치고 있어 미주 쪽의 정보가 부족함을 인지하고 27년간의 미국생활과 그동안의 원정 산행 경험을 토대로 미주 트레킹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마음은 있었으나 미주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혹은 전문 가이드가 없어 망설이셨다면 이제부터는 미주 트레킹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미주 트레킹은 전문 산악 가이드와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산행을 추구합니다. 인원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산행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맞추어 드리는 맞춤 트레킹 여행을 제공해드립니다. 식사도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모두 취사가 가능하며 참석하시는 분들의 기호와 식정에 따라 식단을 짜드립니다. 대부분의 숙소는 Cottage나 Cabin 산장 (한국의 팬숀 형태)을 선호하는데 독립숙소에서 참가자들만의 공간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제공해드립니다. 이 또한 호텔이나 콘도 등을 선호하시면 그렇게 해드리는 등 모든 일정을 원하시는 방향으로 맞추어 짜드려서 완벽한 만족과 즐거움을 전 일정 드립니다. 미주 트레킹은 고객 여러분들께 건강한 삶, 풍요로운 삶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제공해 드리고자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트레킹과 여행. 언제나 살아가면서 웃음 머금고 꺼내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설레면서 함께 떠날 명산 트레킹 여행! 이제 미주트레킹과 함께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