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 노스카이밥 트레일 등산길.
그랜드 캐년 노스카이밥 트레일 등산길.

GRAND CANYON. North Kaibab Trail 등산길.
캐년의 아침은 노새의 방울소리에 놀라 깨어납니다. 여명이 드는 이른 새벽부터 림을 향해 올라야 하는 노새행렬의 분주한 채비에 갈 길이 먼 우리들도 함께 아침을 엽니다. 콜로라도 강을 건너고 리버 트레일을 돌아 다시 강을 건너서 노스 카이밥 트레일을 따라 1천 8백 미터를 올라야 하는 17마일 지난한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수통과 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인디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콜로라도 강변을 따라 걷다 원시에 문명을 접속시킨 다리를 건너 바람의 길로 들어섭니다.

깎아지른 절벽의 틈바구니에 닦아 놓은 브라이트 엔젤과 사우스 카이밥을 연결한 강변 리버 트레일을 긴장을 놓지 않고 걸으며 마음대로 오가는 흰머리 독수리의 날개 짓을 봅니다. 두발로 버텨야 걸을 수 있고 지탱할 수 있으나 그 균형을 잃으면 그만 저 수 백길 낭떠러지로 나락하고 마는 인간. 그래서 저 새들의 비상이 더욱 부럽기만 합니다.

넓은 강물에는 이미 레프팅으로 먼 여행을 나선 이들의 보트들이 간간이 지나며 고즈넉한 캐년의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협곡사이로 흐르는 장대한 강물을 바라보며 감흥에 젖다 저편 너머로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이 시야에 차면서 우리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서둘러 떠나야 하는 길.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의 분기점에서 인증 샷을 날리고 다시 굴다리를 건너 노스 카이밥이 아름답게 휘어진 그림속으로 들어섭니다.

이어지는 협곡을 돌아 돌아가면서 간혹 허물어져 내린 돌무덤들을 봅니다. 언제라도 붕괴가 있을 수 있는 천연 그대로의 길이기에 낙석의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습니다. 머리 정수리에 눈을 옮겨놓고 촉각을 곤두세워 잰걸음으로 협곡을 벗어나려 합니다. 잦은 침수와 범람으로 랜치로 공급되는 물을 수송하는 대형 파이프가 흉물스럽게 파헤쳐져 있고 오래 방치해둔 구 전신주와 전선이 길을 따라 늘어져 있습니다. 자연을 침범한 문명의 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증표입니다.
꼭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 옵니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데 협곡을 빠져나와 평원으로 들어서니 햇살은 더욱 짜증스럽게 합니다. 중천에 머물러 혹독한 열기로 내리 꽂는 햇볕은 나지막한 관목들의 그늘로는 도저히 가려지지않는 가히 살인적입니다.

바람마저 잦아들어 한낮의 열기는 감내하기가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기라 했습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리라 마음먹고 그 더위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체념의 미학을 배우는 순간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옷을 입은 그대로 풍덩 함께 따라 걷던 냇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습니다. 로링 스프링스에서 발원하여 긴 흐름동안 땡볕에 데워진 계곡물은 생각보다 그리 차갑지 않습니다. 맑은 물에 얼굴마저 파묻고 체온이 내려가도록 오래 적시고 있자니 그제서야 조금 시원함을 느낍니다.
한없이 머무르고 싶은 폭염속의 고마운 피난처 맑디맑은 시냇물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듯이 저마다의 보속으로 무념의 상태에서 길을 갑니다. 산이 전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향내에 취해 걷다보니 세상의 소란함은 모두 어디가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정적 속에 올려다보는 협곡의 풍광은 저마다 일품입니다. 아무데나 맞춰 셔터를 누르면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됩니다. 별다른 기술과 도구가 없어도 캐년의 산길은 자연이 주는 작품입니다.

평지 같은 산길이 이제는 비탈길로 변해갑니다. 이즈음 저 멀리 서쪽 깊은 계곡에 하얀 물줄기가 낙하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잡힙니다. 넓게 시작해서 물줄기가 중간에서 좁혀졌다 다시 퍼지는 모양이 마치 리본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지 길로 빠져나가 1.6마일을 가야만 폭포에 이르는데 정상을 향한 머나먼 항로에 차마 그 길을 더 걷기가 두려워 그냥가자며 자신을 달래며 앞만 보고 갑니다.

그래도 자꾸만 힐끗힐끗 본의 아니게 곁눈질을 해대는데 다시는 오기 어려운 이 산행길 평생을 두고 후회하지 않겠냐는 또 다른 나의 항변에 아주 순간적이지만 지독한 갈등을 벌입니다. 더 열심히 걸으면 되지 더 열심히 생을 살면 되지 하며 마음을 바꿔먹고 발길을 꺾어 폭포로 향합니다.

계곡을 따라, 폭포에서 발원한 물길을 따라 키를 넘는 수초를 비집고 물기 먹어 더욱 무성한 숲을 헤치고 올라 드디어 폭포에 다다랐습니다. 거대한 바위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기인 길 물줄기. 땅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부서져 흩날리는 리본 폴스는 마치 수줍음을 감춘 신부의 면사포처럼 바위를 적시고 숲을 덮고 바람을 식힙니다. 무지개를 피우는 그 물의 흩날림으로 세면을 하면서 폭염에 달은 몸을 적십니다.

전율처럼 냉기가 온몸을 퍼져가니 세속의 번다한 잡념들이 사라지면서 깊은 산사에라도 들어온 양 평온과 정적의 안식을 맞이합니다. 엉성한 나무그늘이 드리운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허기로 찬을 비빈 오찬을 마치고 망중한을 즐기는데 밀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나른한 오수에 젖어듭니다. 시간도 공간도 멈춘 적막의 순간입니다. 그런 정지의 현상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빗방울 하나둘 하늘 향한 얼굴에 떨어지니 단잠에서 깨어나 서둘러 길을 재촉합니다.

사람들은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산은 내려오기 위해 오른다 했습니다. 산이 그곳에 있기에 오른다고 영국 산악인 말로리는 말했듯이 산을 오르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누구도 시원스레 밝히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마음에 그 이유를 묻어두고 길을 떠나갑니다.

본길로 들어서 카튼우드 캠프장을 향해 비탈길을 오르는데 하늘이 낮아지면서 짙은 구름이 몰려와 드디어 후드득 굵은 방울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해갈의 달콤함을 느끼며 그 비를 마음껏 몸으로 빨아들입니다. 한낮의 열기를 순식간에 식혀버리는 고마운 비입니다. 마른 사물을 적시는 비가 생성시킨 비릿한 내음을 맡으며 운무에 가려져 더욱 멀어 보이는 노스림의 정상을 바라보면서 배낭 줄을 힘껏 잡아당깁니다.

이제 본격적인 비탈길이 시작됩니다. 로링 스프링스에서 정상까지 7마일의 거리지만 1천미터를 올라야 하는 쉴 새 없는 오르막길입니다. 서녁하늘에 머뭇거리는 식은 태양은 서산마루로 서서히 다가가며 일행을 다그치고 더위를 삼킨 깊은 계곡은 푸른빛이 감돌며 신기루처럼 흔들립니다.

수파이 터널이 저만치 다가와 있는데 점점 발아래로 멀어지는 봉우리들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니 차마 그냥 갈수 없어 길섶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마련합니다. 아무리 붉게 타는 서산낙조가 발길을 재촉해도 이토록 정갈한 황홀경을 바라보며 취하는 휴식을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남은 식재료를 모두 넣어 죽처럼 국처럼 끓여 한 그릇 씩 시장기를 감춥니다. 지친 몸과 마음에 그저 습성으로 우는 새처럼 맛을 모르고 먹습니다. 성서에 표현된 최후의 만찬처럼 긴장이 감돌고 결연한 성정이 이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올라야 하는 4마일 마의 구간이 우리를 시험하려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는 이미 어둠이 스멀스멀 내리고 한가한 달님에게 우리의 이동을 알리고 앞길을 비춰 주라 애원합니다. 이마에는 헤드램프가 착용되고 한발 한발 육중한 발걸음을 옮기며 힘겨운 자신과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긴 여정동안 운전하랴 조리하랴 리드하랴 쏟은 모든 노력이 일시에 피로감으로 몰려옵니다. 선두자리를 내어주고 행렬에 기대어 가는 발걸음이 천근이요 만근입니다. 모두에게 사정은 매양 마찬가지입니다.

지친 일행의 고달픔은 어느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이길. 우리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길입니다. 고되지 않은 산행은 즐거움도 따르지 않는다고 했음을 위안으로 삼고 선두에서 으쌰 소리로 메기니 후미에서 어영차 소리로 받으며 흥겨운 산길로 만들어 나갑니다.

그 정성이 지극해서인지 감복한 달이 유달리 밝은 빛을 뿌려줍니다. 힘든 이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발걸음이 무거운 이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서 노스 카이밥 정상 부분을 정이라는 힘으로 올랐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맞는 이들과 함께 산행을 떠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정상에 섰습니다. 이 멀고 험한 길을 걸어와 정상에 서면 생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가슴 가득 뿌듯한 자긍심으로 채워지지만 울컥 억장에서 걸리는 서러운 슬픔 같은 기쁨이 묘하게 교차합니다.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희열하지만 한켠으론 긴 여정동안 한때는 주저하고 갈등했던 약한 내 자신을 떠올리면서 또한 자괴감으로 아파합니다.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왜 살지 못했을까하는 생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허나 오늘 만큼은 이 아름다운 정상에 서서 푸른 달빛 교교히 흐르는 그랜드 캐년의 깊은 골을 내려다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봅니다. 어렴풋이 더듬어 보는 삶의 궤적처럼 우리가 힘겹게 산을 오른 기억의 여행을 다시해봅니다. 서부 대륙 3대 캐년을 돌면서 순간순간 조우한 명경들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한 모퉁이를 돌때마다 캐년이 보여준 그 잊지 못할 아름다운 비경들, 수려한 풍광들. 이 소중한 것들을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묻어두고 밤이 깊어 밤벌레 울음소리 처량하고 찬란한 별이 총총한 캐년을 무심하게 바라다봅니다.

우리는 어느새 새가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저 별빛 찬란한 하늘을 흘러갑니다. 순간 찰나 같은 우리네 인생의 덧없음이 긴 한숨으로 내 뱉어집니다. 가슴속엔 진한 향수 같은 그리움의 진액이 흘러내립니다. 언제라도 길 떠날 채비를 갖춘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내 삶의 길이 하늘을 나는 새의 길보다 가벼운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모든 것을 비우고 내 삶의 무게만큼만 담은 배낭을 지고 구름 따라 호젓이 저 황혼 속으로 흘러가는 그 삶이 차라리 아름다운 것인 줄을 왜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었을까!

배낭을 메고 성산을 오를 앞으로의 세월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지금의 나이에야 알게 되었으니....


글쓴이
박춘기 - 트레킹여행 전문가
미주 트레킹 여행사는 미국의 심트부인 워싱턴에 본점을 두고 있으며 미주 북미, 중미, 남미 지역에 가장 아름다운 명산과 명산행로를 트레킹 하며 수중 세계가 미려한 캐리비언에서 스쿠바 다이빙과 관광 및 크루저 여행 그리고 미국 대륙 횡단 트레킹 여행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국 내에서는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많은 트레킹 전문 여행사가 있습니다만 거의가 동남아나 유럽, 중국과 일본 등에 치우치고 있어 미주 쪽의 정보가 부족함을 인지하고 27년간의 미국생활과 그동안의 원정 산행 경험을 토대로 미주 트레킹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마음은 있었으나 미주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혹은 전문 가이드가 없어 망설이셨다면 이제부터는 미주 트레킹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미주 트레킹은 전문 산악 가이드와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산행을 추구합니다. 인원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산행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맞추어 드리는 맞춤 트레킹 여행을 제공해드립니다. 식사도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모두 취사가 가능하며 참석하시는 분들의 기호와 식정에 따라 식단을 짜드립니다. 대부분의 숙소는 Cottage나 Cabin 산장 (한국의 팬숀 형태)을 선호하는데 독립숙소에서 참가자들만의 공간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제공해드립니다. 이 또한 호텔이나 콘도 등을 선호하시면 그렇게 해드리는 등 모든 일정을 원하시는 방향으로 맞추어 짜드려서 완벽한 만족과 즐거움을 전 일정 드립니다. 미주 트레킹은 고객 여러분들께 건강한 삶, 풍요로운 삶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제공해 드리고자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트레킹과 여행. 언제나 살아가면서 웃음 머금고 꺼내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설레면서 함께 떠날 명산 트레킹 여행! 이제 미주트레킹과 함께 하십시오.